화정을 보다가.. 발견한 저의 조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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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음 이덕형 슨상님.
저희 가문 출신이십닏..........
그래도 오과장님이... 연기 해주셔서 넘 좋네요(-_-?)
추천 0
댓글 13건
얏옹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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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담 이xx 님이시겠군요. |
SueY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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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얏옹네 ㅋㅋ |
얏옹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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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Ya안녕하세요 이수예님 |
보쓰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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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얏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끅이끅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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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에야님 |
얏옹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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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쓰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왜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지했는뎈ㅋㅋㅋㅋㅋㅋ |
홀로가는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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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얏옹맞아요..얏옹님의 진지함이 보여졌는데..ㅋㅋㅋ |
홀로가는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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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은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1556~1618)과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명신이다.
두 사람은 능력과 경력도 뛰어났지만,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막역한 친구였다. 이항복이 다섯 살 위여서 지금으로 보면 선후배 사이에 가깝지만, 10대 후반부터 그들은 나이를 잊고 사귀었다. 그 우정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수많은 일화를 낳았다. 이덕형은 왜란을 극복하고 당쟁을 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SueY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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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센스없으시네! 이분들! |
SueY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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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가는길굿잡!!!!!!!!!!!!이지요 |
홀로가는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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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의 본관은 광주(廣州)로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정2품) 이민성(李民聖)이고 어머니는 문화 유씨(유예선(柳禮善)의 딸)였다. 그는 1561년(명종 16) 2월 12일 서울 남부(南部) 성명방(誠明坊- 지금의 을지로·충무로·남대문로 일대)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율곡 이이도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듯이, 당시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남자가 결혼한 뒤 처가에서 일정 기간 사는 혼인 풍습)의 영향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덕형도 그런 사례였다. 그의 가계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그가 영의정 이산해(李山海, 1539~1609)의 사위였다는 것이다. 이덕형은 16세 때인 1577년(선조 10) 이산해의 삼촌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의 추천으로 영의정의 사위가 되었다. |
Xyid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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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저는 경주 이씨 익제공판데 ㄷㄷ 저희 조상님중 한분이 오성 이항복 선생님.... |
친절한MJ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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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후손이셨군요 ~~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