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노가리님 쿨거래 후기 : 단편문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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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이라도 아껴보자는 마음에 중고 기기를 사러 장터에 나온 지 며칠째 되는 날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좌판들이 즐비한 길 끝의 모퉁이에 딱 한사람 쭈그리고 앉을 자리. 목이 안 좋은 위치인걸 알지만, 휘황찬란한 기기를 가판대에 늘어 놓고 외쳐대는 큰손들 의 위세에 눌려 택한 자리였다.
그렇게 앉아서 준비해온 팻말을 주섬주섬 꺼내고 추운 날씨에 늘어진 코를 옷섶에 문질러 닦고 나면 ,이제는 하릴 없이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늘상 탁배기에 취해 말상대를 해주던 장씨도 엊그제 액상 세금을 욕하며 난동을 부리다 나랏님들에게 끌려가고 없었다. 듣기론 엊저녁에 다리를 절며 돌아가는 것을 본이가 있다하니 치도곤이라도 당한 모양이었다. 별 수 없이 지나는 인간 군상을 구경하며 새로 구매한 액상을 피워댈 뿐.
수레에 액상 상자를 가득 실어서 방주를 짜는 사람, 보따리를 싸서 피난 가는 사람, 얼마라도 건지려고 가진 기기를 파는 사람들로 거리는 마지막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뻐끔뻐끔 거리다 어느새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를 보며 이만 털고 일어날까 고민하던 순간에, 발 앞에 한 인영이 드리웠다.
"트리오를 사시오?"
줄줄 흐르는 코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자 단정한 차림에 초췌한 인상의 한 남성이 눈에 잡혔다. 그렇다 말하자 남성은 품에서 빨간 파인드 트리오 하나를 내놓았다.
"이건 어떠시오? 사용감이 있긴 해도 나름 정발판이라오."
남자의 말대로 사용감은 있지만 색도 마음에 들고 며칠째 앉아만 있는 것에 이골이 난 터라, 나는 재빠르게 손을 비비며 말을 받았다.
"이게 요즘 보통 만원에 거래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으리?"
그의 슬픈 듯한 반응에 나는 재빨리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았다.
"코일 다리만 잘라주면 아직도 명기라고 생각하지만, 출시 당시에 누수 이슈도 심했고, 한창 세금 문제로 말 많던 시기라 화제몰이에 실패해서 잊히고 말았다보니 중고가가 아무래도… 무엇보다 찾는 사람이 없어서…"
말끝을 흐리며 남성의 얼굴을 살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한 손에 기기를 꼭 쥐고 엄지로 어르듯 쓰다듬기만 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낯빛이 어두우신걸 보니 팔진 않으실 모양입니다."
이제 해도 뉘엿하고 한기가 신발을 뚫고 들어오는 터라 나가리다 싶으면 이제 집에 돌아갈 요량으로 채근하듯이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마치 감정을 삼키듯 깊은 숨을 들이키고는 체념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오. 팔겠소. 가지고 있으면 마음만 아파질 테니…"
그제야 그가 손에든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For sale:
voopoo find trio, never to be used again
그래도 나름 통박 깨나 굴린다는 소리를 듣는 터라 어떤 물건이었는지 내심 짐작이 갔다. 더는 묻지 않고 소매에서 냉큼 돈을 꺼내서 건네주자 남성은 이것들도 가져가라며 새것에 가까운 액상 한 병과 무화기 거치대를 건네주었다. 입으로는 아이고 이러면 밑지는 장사 아니십니까요 따위의 소리를 내면서도 잽싼 손놀림으로 물건들을 소매에 넣었다. 남성을 더 필요한 것이 없냐 재차 묻고서는 마지막으로 내 손을 잡고 기기를 쥐어주었다. 꼭 쥔 두 손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남성은 말했다.
"전 여자 친구의 것이었소"
그리고선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인파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그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아귀의 힘과 따듯한 체온이 아직도 손에 남은 듯 느껴졌다.
그는 홀가분했을까, 혹시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걷는 건 아닐까. 혹시 후회하진 않을까. 나는 결코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모쏠아다니까.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콧물이 범벅된 옷섶으로 닦으며 생각했다. 추워서 그런 거라고. 눈물 날 만큼 추운 빌어먹을 날씨 탓이라고.
제목: 여친 물건 파는 분 만나 쿨거래한 썰 품
판매자분 허락 하에 거래하면서 생각나서 써 본 이야기입니다. 글처럼 실제 대화도 저런 식이었습니다. 국내 정발판 트리오 판다고 하시길래, 트리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고 시세가 나락에 갔다, 그래서 만원쯤 한다라고 하니 반응이 슬퍼보인다고 가지고 있어봤자 슬플거라고, 전여친것이니 판다고 하셨습니다. 구매한다고하자 따로 액상도 나눔해주시고 뭐 다른 기기는 안쓰냐 필요한 건 없냐 하시더니 무화기 거치대까지 넣어 주셨습니다. 사용해보니 기기도 잘 작동하고 거치대고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액상도 달기로 유명한 비비드 초코 액상이라서 지금 피는 액상 피는대로 바로 피워볼 요량입니다. 벌써부터 혈당수치가 오르는 듯 하군요.
글재주가 없어서 남들 후기 쓰듯이 살갑게 쓰질 못해서 나름 느낀 바를 짧게 소설로 써봤습니다. 뭔가 슬픈 물건을 판다는 점에서 착안해서 유명한 해밍웨이의 6단어 소설을 차용해서 써봤습니다. 대화 내용은 최대한 살리되, 나머지 부분은 마음대로 각색했습니다. 특히 모쏠아다라는 부분에 상당한 각색이 들어갔습니다. 쿨거래해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신 국산노가리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만 사온 대꼬리 마시러 갑니다. 추워서 그래요 추워서.
댓글 9건
세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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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거래후기가 ㅋㅋㅋ
아주 잘읽어봤습니다 날이 많이 춥지요??? |
주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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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웈ㅋㅋㅋ 작가하셔도 되겠어요..
소설책 하나를 읽는 느낌인데 느껴진 감정들이 1.슬픔 2.훈훈 3.재미 4.쓸쓸함+추움 등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네욬ㅋ>_< 새로운기기 영입 축하드립니다!! |
국산노가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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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에 얽히고 이래저래 사연있는 기기이긴 하지만..
필력와.. :) 지인짜~b |
아픈거나을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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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한편의 소설을 읽는듯한 ..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ㅎㅎ |
02boogi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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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추천.. |
DDUMBBU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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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
필력이 정말 어메이징하십니닼ㅋㅋ꿀잼이었네용 ㅎㅎ |
김프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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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로서 한말씀 올리겠소.
아니 "모쏠아다" 가 글쓴이가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라 생각했거늘... (ㅋㅋㅋㅋ) 이것이 허구였다니 믿을 수가 없구려... 이것은 마치 드라마"파리의 연인"의 마지막 회의 내용에서 밝혀진 "꿈" 이었다라는것을 알게 되었을때 보다 더 허탈하기 그지없소. ㅋㅋ |
고래스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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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편도 기대됩니다 ㅎㅎㅎ |
딸기농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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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다만 저도 엄청난 반전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겠네요 ㅋㅋㅋ |